제사의 유래

일상 2019. 2. 1. 14:47
일반적으로 조상제사를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인 줄 알지만 실상은 외래에서 수입된 외래문화이다.

외부에서 들어왔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문화 전통이 된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옛날 순장(사람이 죽으면 가족과 노비도 같이 죽여 장사지내는 것)도 오랜 세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다가 폐지된 예를 보라...  오래된 것이라 하여 무조건 전통이라 할 수는 없다.

구습과 악습은 타파됨이 마땅하다. 제사는 우리 한반도 고유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구습이 전례된 예이다. 그런 외래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에 대하여 사가(史家)들의 연구한 바에 의하면, 고려 중기 이전까지는 제사흔적을 찾을 수 없다가, 고려 말기에 나타난다고 한다.  
 제사의 유래


중국의 제사 기원은 공자 이전, 하나라와 상나라 때부터라고 하며, 시황제는 천제(하나님께)를 드렸는데 그것이 조상제사, 그것도 왕의 조상제사로 발전되고, 유교 사상이 정립되면서 그 기틀이 잡히고. 주 나라 때에 와서 성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조상제사도 지금처럼 죽은 자를 위한 제사가 아니고, 종손을 높이는 의미로 살아계신 부모를 높은 곳에 앉히고 제사형식의 예를 올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든 백성이 아닌 황실에서만 적용되던 제사가, 그렇게 해야 후손이 잘 된다는 유혹을 받은 제후들이 따라서 하게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 무너지는 사회질서 속에서 평민들도 자기의 신분을 높이기 위하여 다투어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후에 대상이 죽은 부모에게까지(과도한 과시욕의 욕구) 발전된 것으로서, 제사 관습은 인간의 이기심과 신분상승 욕구의 산물인 것을 알 수 있다.  
 
제사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이 되기는 훨씬 후대인, 송나라 때에, 주자학(朱子學)을 창안한 주희(주자)였다고 한다. 이것이 주자학과 함께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퇴계 이황에 의하여 '성리학'으로 정립되고 아울러 제사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고려 말에 최초로 소수의 귀족계층에게 특권의식으로 제사가 들여지다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이태조(이성계)'에 의해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고, 이후에도 제사문제는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 제사이며, 그것도 처음엔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산 부모에게만 절하는 존숭의 한 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전래된 제사가 전 국민에게 확산된 것은 부모에게 효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집권층의 정치적 안정을 노린 정치적 술수였음이 사료를 통해 드러난다. 예나 지금이나 집권자가 자기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민 정책을 쓰기도 한다. (박정희의 반공사상, 전두환 3S 정책) 
 
고려 말 정권을 무력으로 탈취한 이성계가, 도덕성이 문제되어 민심이 이반되자 정권의 유지를 위한 묘안으로 내놓은 것이 온 국민을 제사할 수 있게 한 것인데, 그 묘안은 이성계의 자문이며 우인이요 국부로 여기는 '무학대사'가 제안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김기춘, 최순실...) 
 
무학 왈 "정권은 칼로 잡을 수 있으나 이반된 민심은 칼로 잡을 수 없으니 간접적인 방법을 쓰세요' 자고로 이 백성은 조상에 대한 효가 극진하오니 이를 장려하면 옳게 여길 것이외다" 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조상제사를 더 많이 하도록 권장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제사를 권장하면서 아울러 제사床의 규례도 제안했는데. 젯상의 필수 제수품으로 '대추 밤 감'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의도(집권정권유지)가 있는데, 대추는 씨가 하나라 "이 나라의 임금은 오직 하나다" 라는 것이요. 밤은 한 송이에 세 알맹이로서 "삼 정성을 둔다"는 것이며. 감은 씨앗이 여섯 개라 "육 판서를 두어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백성들이 제사를 지낼 때마다, "홀로 하나이신 왕이시여! 삼정승, 육판서를 거느리시고 왕의 나라가 태평성대하소서"하고 기원하는 예가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 수 없는 우매한 백성들은 제사 때마다 삼실과가 빠지면 정성이 부실하고 여겨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음식은 적당하게 하더라도 그것만을 기필코 챙긴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수된 것이 오늘의 제사인데, 유독 우리민족, 자신들만이 효성스런 자손이라고 자부하면서 제사를 울겨 먹는다. 제사하는 자손이 거기에 맞는 행실을 하는가 보라?(물론 다는 아니지만) 살아생전에 부모 가슴을 후벼파고 마음고생 시키다가 죽은 다음에 예를 올린다고 하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그러면서도 제사를 고유한 문화전통이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및 신앙처럼 여기면서 고집하는 것은, 아직도 태조 이성계(소수 집권 야욕층)에게 속고 있는 것이요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있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출처 http://blog.daum.net/londonhorace/15458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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